요즘 핫한 철학자 아루투어 쇼펜하우어는 독일의 철학자다.
쇼펜하우어는 스스로 자신이 칸트의 사상을 가장 올바르게 계승했다고 생각하는 칸트사상의 계승자이다. 그는 당대의 인기 학자였던 헤겔이나 피히테 등에 대해서 칸트의 사상을 왜곡하여 사이비 이론을 펼친다며 맹렬히 비판했었다. 대학 강의에서 헤겔과 충돌한 후 대학교수들의 파벌을 경멸하여 아무런 단체에 얽매이지 않고 대학교 밖에서 줄곧 독자적인 연구활동을 지속하였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속하는 19세기 전반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유명세를 치르는가 싶더니 20세기 전반부에 다시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난해하다고 무시되기도 했고, 일부 철학 교수들조차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탐구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많은 철학자 중에서 중요한 철학자로 평가되고 있는 프리드리히 니체나 비트겐슈타인에게 그의 철학이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쇼펜하우어를 평가했다.
오늘날 문화가 이토록 천박하지고 황폐해지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기운찬 줄기와 가지를 내뻗을 수 있는 생명력을 지닌 뿌리 하나라도, 비옥하고 건강한 토양 한 줌이라도 찾으려고 헛되이 애쓴다. 그러나 도처에는 먼지와 모래뿐이니 모든 것은 마비되고 탈진해서 죽어간다. 이런 상태에서 마음 한 자락 둘데 없이 고독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 상징은 뒤러가 그려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죽음과 악마와 동행하는 무장 기사'이다. 무쇠처럼 굳센 눈빛과 철갑옷으로 무장한 이 기사는 자신의 끔찍한 동행자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희망도 품지 않으면서 자신의 말을 타고, 자신을 따르는 개와 함께 험난한 길을 혼자서 고독하게 걸을 줄 안다. 뒤러가 묘사한 이 기사가 바로 우리의 쇼펜하우어와 같다. 그는 모든 희망을 잃고도 진리를 추구했다.
쇼펜하우어는 철학분야 보다도 그 외의 문학분야, 예술분야 등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자신의 <트리스타과 이졸데>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에 대한 답변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말은 1859년에 나왔는데, 쇼펜하우어는 바그너에게 무관심했으므로 바그너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1854년에 친구이자 시인인 게오르그 헤르베크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들고 바그너를 찾아가 그에게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위 저서를 추천하였고 바그너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1년에 걸쳐 4번이나 통독한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후 바그너는 자신의 작품 <니벨룽의 반지>와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라는 자필 헌사를 쇼펜하우어에게 보냈으나 쇼펜하우어는 어떤 답장도 바그너에게 보내지 않았다. 쇼펜하우어는 바그너의 작품인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바그너와 함께 관람한 적도 있는데 쇼펜하우어는 바그너에 대해서 '바그너는 음악이 뭔지 잘 모르는 인간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일화에도 불구하고 바그너는 이후로도 평생 동안 쇼펜하우어를 존경했다고 한다.
아마도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분야는 문학계일 것이다. 러시아의 소설가인 톨스토이, 이반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에밀 졸라 그리고 독일 작가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영미권 작가인 토마스 하디, 조지프 콘래드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창작에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인정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보면 불교적 색채가 강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쇼펜하우어의 사상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쇼펜하우어의 이름이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니나>와 토마스 하디의 <테스>등의 소설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앙드레지드는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쇼펜하우어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표현할 수 없는 기분으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자세히 읽어나갔고 자주 읽었다. 다른 모든 것들이 나의 주의를 뺏지 못할 정도로 집중해서 읽었다. 스피노자나 니체같은 철학자들의 책도 읽었다. 내가 철학에 빠진 계기는 오로지 쇼펜하우어 덕분이었다. 쇼펜하우어보다 헤겔을 더 좋아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톨스토이는 유일하게 쇼펜하우어의 초상화만을 집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를 탈고하기 직전인 1869년 여름에 자신의 친구이자 쇼펜하우어 책을 번역한 아파나시 페트(본명:페트 센신)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이번 여름에 내가 뭘 했는지 알고계십니까? 나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강력한 기쁨을, 여태껏 한 번도 몰랐던 감동을 만끽했습니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모든 책을 모조리 구해서 읽었고 자주 읽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강의를 수강한 여느 학생도 내가 이번 여름에 발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배우지 못했으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앞으로 나의 이런 의견이 언제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는 쇼펜하우어야말로 모든 인간들 중에 위대한 천재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당신은 쇼펜하우어가 철학적 주제들을 다룬 무언가를 썼다고 말해주셨습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것은 경이롭고도 생생하게 성찰되는 온전한 세계입니다. 나는 벌써부터 쇼펜하우어의 글을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함께 번역에 참여하시겠습니까? 쇼펜하우어의 책을 많이 읽는 나는 어째서 아직도 쇼펜하우어가 그토록 세상 사람들에게 덜 알려졌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이유란 아마도 쇼펜하우어가 토로했듯 세계는 하찮은 인간들로 가득하기 때문이겠지요.